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 OST다. 너무 좋았다. 흥겨운 부분의 음악은 영화의 단체 댄스와 더불어서 너무 잘 어울리게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적인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만으로도 좋았는데 영상과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음악적 연출에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나중에 영화 OST만 따로 들어도 좋은 평가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는 내면의 중요성, 사회적 한계의 극복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내면의 중요성이다. 알라딘은 좀도둑이라는 설정이지만 자신이 먹을 걸 배곯는 아이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양탄자를 도와주고 지니에게 자유를 주는 등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욕심 없고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다. 선한 사람에게 지니의 램프, 양탄자의 도움, 자스민 공주의 애정이 돌아간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알라딘이 운 좋은 주인공이라 램프를 얻고 양탄자와 자스민의 마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마음과 행동이 다른 이의 마음을 산다는 것이다.
자스민은 겉모습이 화려한 왕자 보다 좀도둑 알라딘의 따뜻한 마음을 보고 결국 알라딘을 선택한다. 알라딘이 지니의 도움으로 겉모습이 왕자로 변했지만 자스민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왕자가 알라딘인 것을 눈치 채고부터 다시 관계를 이어 나갔다. 이렇듯 영화에서는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대비시켜서 보여준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악습이나 기존의 사회적 굴레를 부수는 장면이 잘 나온다. 좀도둑인 알라딘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도둑질 밖에 없다고 말한다. 가난이나 경범죄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여성 지도자가 나온 적 없는 곳에서 최초의 여성 지도자가 나온다. 근위대장이 ‘술탄’이라는 권위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정의로 판단한다.
절정은 마지막 엔딩에 나온다. 지니가 알라딘에게 공주는 반드시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 규정을 마법의 힘으로 삭제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알라딘은 마법의 힘으로 공주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로 둘의 결혼이 이루어진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원작은 거의 30년 전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말하고 있었다.
추가로 지니를 연기한 윌 스미스가 매우 좋았다. 너무 잘 어울렸고 춤, 연기가 모두 훌륭해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지니가 된 자파는 알라딘 시리즈를 예고하는 것 같다. 어떤 음악, 주제를 달고 나올지 모르겠지만 속편이 기대될 정도의 좋은 작품이었다.
미래의 학생, 청소년,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단연코 바르게 생각하는 힘, 바른 가치관과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목표가 없는 노력, 뜻이 없는 힘만큼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성장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클리셰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헌병대 장교 이케다와 독립운동을 하는 간호부 연주의 사랑을 소재로 다루었다. 서로를 적대하는 집단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부분에서는 비슷하지만 두 사람을 사랑에 빠져 들게 하는 것은 가벼운 애정이 아니라 서서히 상대방에게 감화되는 과정이다. 따뜻하고 정의로운 신념을 가진 연주에게 일본 헌병 장교 이케다의 가치관이 변하며 사랑의 감정을 가진다.
먼저 우리 사회가 길러내야 하고 청소년들의 이상향으로 제시된 연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연주라는 인물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인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 넘을 수 없는 벽인 남녀차별을 뛰어넘어 의술을 배우고 자신의 실력을 길러나가는 인물이다. 또한 이렇게 기른 실력을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려는 의지가 있는 역할이다. 최근의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영달에만 관심이 많고 사회적 기여나 정의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청소년이나 젊은 청년들이 성장해야 할 방향을 지시해 주는 책이 될 것 같다.
연주가 극복한 것인 이러한 사회 분위기뿐만 아니다. 연주는 개인적인 과거의 상처, 트라우마도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몸을 단련하고 실력을 키워 나가며 더 좋은 방향으로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킨다. 우리 주변에도 개인적, 가정적인 위기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위기를 겪으면 상처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것이 쉽지 않다. 위기에 쉽게 굴복하지 말고 과거를 극복해 성장해야 하는,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이케다는 이런 연주를 감시하고 조사하며 그녀의 행동,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변한다. 연주를 사랑하게 되며 일본군 장교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타국, 타인을 억압하고 괴롭히던 스스로와 일본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한다. 결국 연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와 자유를 위해 남은 생을 살겠다고 말하며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 이케다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처럼 한 사람이 주변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상이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영화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은 익히 알고 있는 타짜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시리즈와 마찬 가지로 ‘도박으로 승리’라는 내용이 아닌 다른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주인공 ‘도일출’과 그의 어머니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려 합니다. 거대한 도박판에서 살아남고 마음만 먹으면 도박으로 큰돈을 얻을 수 있지만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모습, 짝귀에게 받은 돈이 있지만 새벽부터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를 통해 평범한 삶에 대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이 공무원 합격을 한 뒤, 돈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짝귀 역시 돈이 아니라 가족을 챙겼죠.
하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사실 중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타짜 시리즈 역시 철학적이거나 명확한 주제 의식이 있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기대한 다른 부분도 영화는 채워주지 못합니다.
일단 앞선 타짜 1,2에서 너무나도 자주 봤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도박으로 빚을 지는 주인공, 주인공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을 속이는 사기꾼, 주인공을 이끌어 주는 타짜 등 너무나도 뻔하고 익숙한 클리셰와 전개, 인물들이 계속해서 영화를 이끕니다. 익숙한 클리셰는 이미 검증 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한 장면이 전작을 뛰어 넘으려면 더 임팩트가 있거나 새로운 요소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정민’은 개인적으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 ‘도일출’은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납득도 잘 안가는 캐릭터였죠. 처음 보는 여자와 국밥을 먹으며 특별한 이야기를 이끌어 낸 것도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적당히 도박하던 공시생이 갑자기 사채까지 사천오백을 땡겨서 여자 때문에 자존심 싸움을 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마돈나에게 빠져드는 장면은 연출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돈나에게 반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고 어색한 국밥집 대화는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또 주인공이 마돈나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느낄만한 연출도 없어 보였습니다. 뭔가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사연 있는 여자라는 느낌을 내고 싶었던 마음은 알겠지만 관객에겐 이상한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전편에서 보았던 김혜수, 신세경이 연기한 캐릭터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모습 이였습니다.
사기 당하는 장면은 어떤가요? 타짜2의 주인공 대길이 9984점으로 빚지던 장면이 기억하시나요? 굉장히 임팩트 있고 긴장감이 흐르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적당히 주인공이 돼서 클리셰를 따르기 위한 장면으로만 보였습니다. 영화에서 모든 포커 게임은 단판, 올인 승부였습니다. 전편과 같은 전개로 가려면 적어도 연출이나 다른 장치를 통해 더 특별한 무언가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소재만 포커로 바꿨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의 스승 애꾸는 어떤가요? 고니의 스승인 평경장, 대길이의 스승인 고광렬은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는 캐릭터 였고, 고광렬도 타짜1을 본 입장에서 너무나 반가운 캐릭터입니다. 류승범의 애꾸도 시작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그런 스타일로 나온 것만으로도 기대가 됐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여준 것 없이 허무하게 사라졌습니다. 본인의 실력을 보여준 것도 없고, 외모에서 기대한 특별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팀을 만들고 시나리오를 짜는 도둑들, 오션스 일레븐 같은 연출 이외에는 애꾸의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영화를 보신 분들은 느꼈겠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다뇨. 그렇게 쓸 거면 굳이 류승범의 애꾸가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듭니다.
이렇게 기존의 흥행 클리셰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만 이야기의 개연성으로 이해가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도일출은 도대체 왜 마돈나에게 반한 걸까요? 첫 눈에 반하는 그런 걸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첫눈에 반한 불법 도박장 딜러를 위해 사채 사천오백 정도는 쓰실 수 있나요?
도박장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은 배신자인 걸까요? 배신자라면 도대체 왜 배신한 걸까요? 이야기를 위해 만든 거니 그냥 넘어갈까요?
애꾸는 도일출을 어떻게 한 눈에 알아 봤을까요? 20년전에 짝귀가 죽었다면 20년전 어린아이를 보고 바로 짝귀가 떠오를 정도로 닮았다는 설정인가요? 여러분은 정말 닮았다고 해서 20년전 만난 분의 아이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으신가요? 저는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사기팀의 구성원의 첫 설정을 왜 했을까요? 여자를 유혹하며 나오는 까치, 손기술이 좋은 영미, 사기꾼 역의 권원장은 어떤 매력을 보여주려 했을까요? 그냥 소모품 인가요? 작전 중 까치는 여자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고, 영미는 손기술을 발휘하지도 않습니다. 권원장은 그냥 사기꾼으로 끝났습니다. 셋 밖에 안되는 인물들에게 자신만의 매력, 사연도 없는 연출은 성의가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도둑들, 오션스 일레븐처럼 10명이 넘은 인물들도 각자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는데 타짜3는 이런 부분도 아쉽습니다.
애꾸를 실화로도 기술로도 압도했던 마귀는 마지막 그런 간단한 바꿔치기도 눈치 채지 못하는 호구였습니다. 짝귀도 이기고 모두가 칭송하는 애꾸도 이기던 마귀가 너무 쉽게 첫 판에 속는 모습에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반대로 처음 호구로 나왔던 우현은 뒤로 가면서 이상하게 포스 넘치는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우현은 사람을 아무렇게 죽이는 정말 법을 초월한 인물로 변하더군요. 그러면 애초의 도박은 왜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부하들 시켜서 다 죽이고 돈 빼앗아 가면 그만인 걸 말이죠.
마지막으로 제목에 원 아이드 잭은 왜 달고 나온 걸까요? 허영만 화백님의 시리즈를 따라 한다는 의미였을까요? ‘원 아이드 잭’은 어떤 카드로도 사용 가능한 만능 최고의 카드죠.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해당 내용을 의미하거나 상징라는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애꾸니까 원 아이드 잭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타짜의 전작이 너무 좋은 작품이라 시리즈물은 계속 나오고 앞의 작품과 비교를 당하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운 작품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많고 킬링 타임용 영화를 보실 분들은 상관없지만 전작들만큼의 긴장감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타짜:원 아이드 잭’ 리뷰입니다.
조커 역시 그런 영화이죠. 영화는 영화로만 보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저는 문화가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커는 영화로만 보면 소재는 조커의 기원, 주제는 <0. 내 비극을 타인이 보기엔 코미디라는 관점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 영향은 <1. 위험의 경고>와 그럼 이제 <2.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0. 관점의 변화>
영화 속에서 과거의 아서가 머레이 쇼에 방청객으로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에서 아서가 사랑스럽다고 느끼진 않았나요? 저는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 ‘아서’를 영화에서 만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아서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상담을 받고, 직장에서 웃음을 주기 위해 일하고, 노력하며 이겨내고 힘겹게 ‘계단’을 올라갑니다. 여느 비극의 주인공처럼 말이죠. 하지만 세상과 등장인물들은 이 사람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대해주지 않습니다. 관심조차 없죠.
이런 착한 남자는 (집단 폭력), (직장 해고), (아픈 어머니), (복지 예산 삭감으로 상담, 약 끊김), (조롱의 대상), (거짓말과 배신), (사회와 타인의 배척) 등 무수한 고난을 겪습니다.
그러다 아서는 부당함, 억울함에 총기로 살인을 저지르며 저항합니다. 그런데 본인의 저항이 그동안 관심 없던 자신에게 비극의 주인공 아서로서가 아닌 광대 살인마 아서에게 관심을 줍니다. 아서도 그러한 관심이 맘에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아서는 점점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게 됩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아서를 밀폐된 곳에서 촬영하는 답답한 화면 구성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럼 아서라는 인물은 막다른 곳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처음에는 아서는 자살을 생각 했습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는 생각을 했겠죠. 머레이 쇼에서 자살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살 예행연습까지 하는 것을 보며 이때까지는 확실히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위로’를 하러 온 배신자 친구가 속마음을 내 비추죠. ‘나한테 피해가 없게.’, ‘넌 어찌되든 상관 없어 나한테 피해가 오지 말아야해.’라는 완벽한 타인으로 말이죠. 저는 그 순간 아서가 본인만이 스스로를 비극이라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서의 비극에 관심도 없고 공감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개 같은 코미디로 주인공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비극의 주인공도 개 같은 코미디의 주인공도 안 하기로 결심 합니다. 대신 살인으로 타인의 비극을 조크 삼아 스스로를 웃기는 코미디언 ‘조커’가 됩니다. 살인이라는 조크를 하는 코미디언 ‘조커’를 보며 다른 사람들도 열광합니다. 이런 관점의 변화는 영화 엔딩에서 더 분명히 보여줍니다. 완벽한 엔딩이죠. 마지막에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조커가 된 뒤에 계단을 마음 편히, 즐겁게 신나는 춤을 추며 내려옵니다. 춤은 조커를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는 아서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피로 웃는 얼굴을 만들며 골목이 아닌 큰 거리 한가운데서 코미디의 광기와 전율을 완성합니다.
<1. 경고>
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조커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사회 속에 막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다른 곳에 가진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미 언론에서 위험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막다른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자살 대신 폭력으로 표현 할 것이 두려운 것 같습니다. 조커처럼 생각할 것이 두려운 거죠. 영화는 마치 ‘넌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야’, ‘모두가 네가 죽어 봤자 오히려 좋아할걸?’, ‘널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 뿐이야.’ ‘넌 개 같은 코미디의 주인공이거든 네가 죽어도 관심도 못 받고 모두 비웃고 심지어는 배신자 친구처럼 잘됐다고 좋아하는 놈도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말합니다. ‘너에게 부당하고 억울함을 준 사람들에게 널 보여줘. 넌 관심을 받고 너의 개 같은 코미디를 보고 있는 관객 역시 웃고 있을 수는 없을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2. 어떻게?>
그렇다면 이 영화는 폭력을 정당화만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영화는 경고와 함께 방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곳곳에서 알려 줍니다.
먼저, 아서가 기댈 곳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복지 예산이 남아서 아서가 꾸준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적어도 약이라도 복용 했다면 어땠을 까요? 고용보험이나 기초수급, 정신과 상담 등 아서는 광기를 억누를 수 있었을 겁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는 복지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 주변 사람들은 어떨까요? 직장에서는 그를 공정하게 상황을 이해해 주고 받아들이며, 지하철 안에서 부당한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면 아서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조금 더 감싸는 사회적 인식의 필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사람들을 비웃고 멸시하며 그 사람들 속에서 몰래 웃으며 코미디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비극과 아픔을 함께 받아들여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힘들면 조금 이기적으로 본인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나쁘게 까지 생각하면 ‘이렇게 하면 그래도 난쟁이 친구처럼 살아남지 않겠어?’ 라고 말입니다.
총은 누구나 쉽게 강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총기라는 강한 무기가 위험성에 비해 너무 접근이 쉬우니까요. 아서에게 총이 주어지지 않았으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가 미국에서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언론처럼 영화가 위험할까요? 아닙니다. 바로 총기가 위험성을 실현하는 거죠.
그렇다면 왜 미언론이 조커를 낮게 평가하느냐? 미국의 무기 산업은 거대 자본으로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익히 알듯이 언론은 자본에 지배됩니다. 미 언론에서 조커에 낮은 평점을 내렸다면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 총기 규제를 두려워하는 무기 산업과 자본이 조커가 싫은 것이겠죠.
T.W의 진실
T.W가 의미하는 것을 진실(?)도 망상(?)도 아닌 이제는 ‘상관없다.’ 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미 막다른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상관없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여기서는 혼란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조커는 이제 진실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고민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왜 완벽한 엔딩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는 재밌는 조크가 떠올랐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상담사가 들려 달라고 하자.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상담사를 죽이면서 그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드는 조크는 조커에겐 코미디 이지만 상담사는 비극이라고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죠. 상담사는 이해하지 못할 조크인 것입니다.
그리고 찰리 채플린 영화를 오마주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찰리 채플린 주인공의 영화를 자신과 무관한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봅니다. 영화 속 부유층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