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구병모)

 

아저씨와 같은 액션 영화 한편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60대 할머니인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처음 이 책에 입문하는 것에 어려움이 조금 있다. 바로 책 초반부가 호흡이 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존에 보기 힘든 생소한 당어들도 중간에 끼어 있다. 사실 오랜만에 인터넷에서 단어를 검색하며 읽게 된 책이다.

 

어쩌면 살면서 한번도 듣거나 사용하지 못했을 단어도 보았다. ‘우듬지어학사전에 검색하니 나무줄기의 끝부분 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 내가 글을 쓰다가 이러한 표현을 쓴다면 줄기 끝 부분이라고 적나라한 단어를 사용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덕에 아름다운 단어 하나를 배운 기억이 새롭다. 가능하면 작가의 책을 더 읽어 나가며 좋은 단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 뿐만 아니라 시적인 표현이 많이 나와서 읽는 내내 마음이 간질거린 것도 있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입안에 도는 감미, 아리도록 달콤하며 질척거리는 넥타의 냄새야말로 심장에 가둔 비밀의 본질이다. 우듬지 끝자락에 잘 띄지 않으나 어느새 새로 돋아난 속잎 같은 마음의.

 

나는 해당 부분이 주인공 조각의 마음이 변화됨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평생 정을 붙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절제하였지만 조각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간절히 바라는 달콤한 마음인지...

 

저런 작은 마음의 한 귀퉁이의 변화를 마음이 동했다.’ 혹은 생각이 들었다.’, ‘신경이 쓰였다.’ 정도로 표현해 남기기에는 분명 아쉬움이 남았으리라. 때문에 더 신경 쓰고 다듬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위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겨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주인공인 액션 영화는 여느 면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된다. 하지만 극의 긴장감이 부족해서 재미가 없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클리셰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조각'에 마음속 우듬지에 따뜻함이 돋아난 것은 좋았으나 '조각'이 마지막에 해보고 싶던 네일아트를 통해서 그것을 끝마친 것을 보며 어쩌면 작은 일상, 조그맣고 평범한 행복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했으나 나는 조각이 좀 더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에서 새로운 단어, 좋은 표현은 꾸준히 읽으며 배울만 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임>

문득 드는 생각인다 무용의 죽음은 복선이 아니라 '조각'이 업자에게 그 사후처리를 부탁하는 모습을 통해 얼마나 위험한지, 죽음을 어느 정도 까지 각오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장치 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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